아줌마

작성자
해리
작성일
2024-06-20 17:23
조회
85


아줌마 / 이미경

지하철에서의 일이었다.
퇴근하는 사람들로 지하철 안은 콩나물 시루가 따로 없었다.
환승역을 지나자 좀 나아졌지만 앉을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여고 친구들을 만난다고 평소에 잘 신지 않는 굽 높은 구두를 신은 탓에 발이 아팠다.
앉을 자리가 날까 둘러봤지만 일어날 기미를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체면 불고하고 구두를 벗고 서 있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았다.

몇 정류정을 더 가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어서는 학생이 보였다.
학생 앞에는 젊은 남자가 서 있었지만 사정 이야기를 하고 앉고 싶을 만큼 발의 고통이 심했다.
빠른 걸음으로 그곳으로 갔다.
다행히 남자는 앉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한 걸음만 가면 앉을 찰나였다.
뭔가가 자리에 툭 떨어지더니 나보다 먼저 자리를 잡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작은 가방이었다.
어디에서 떨어졌나 생각할 틈도 없이 몸집 좋은 아줌마가 나를 쓱 밀치며 자리에 앉았다;

세상에는 남자, 여자, 아줌마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줌마의 사전적인 의미는 나이든 여자를 가볍게 또는 다정하게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이다.
결혼한 여자를 일반적으로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줌마를 여자의 범주에서 따로 분류해 놓은 것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성(性)이란 뜻이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지만 아줌마에게는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무언가가 있기는 하다.

며칠 전의 일이다.
동네에 양식집이 들어섰다.
개업하자마자 맛있다는 소문이 퍼져서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맛을 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예약도 받지 않았다.

나는 일찌감치 그곳에 가서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
건너편 테이블에 일곱 명의 여자들이 앉아 있었는데,
종업원과 승강이를 하고 있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대결이었다.

그 집은 음식을 시키면 테이블 하나에 고르곤 피자 한 판을 서비스 했다.
건너편 일곱 명의 여자는 피자 두 판을 요구했다.
종업원은 일곱 명을 한 테이블로 계산하면 피자를 한 판 밖에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여자들은 세 명, 네 명 따로 왔다고 생각하고 피자 한 판을 더 달라며 승강이를 했다.
보통의 경우 이럴 때는 가계의 규칙에 순응하거나 조용히 피자 한 판을 따로 시킨다.

지하철에서 잽싸게 가방을 던져 자리를 확보하는 민첩함이나 일곱 명이 함께 왔더라도
세 명, 네 명 왔다고 생각하라는 용감성은 분명 아줌마가 아니면 못할 영역임에 틀림없다.

슬슬 무릎까지 아파지기 시작했다.
앉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사람이 많은 이곳에서 쥐라도 날까봐 걱정이다.
내 자리를 가로 챈 아줌마라면 저 아줌마라면 어떻게 할까 궁금해졌다.
뽀글뽀글 파마한 머릿속에는 순발력의 기지가 무궁무진할 것 같았다.

다음 역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아줌마의 옆자리가 비었다.
얼른 가서 앉았다.
내 앞에 젊은 여자가 섰다.
화장이 짙었다.
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답건만 모르는 것 같았다.
긴 다리를 드러내고 싶었는지 치마가 짧았다.
머리로는 자신의 개성 표출이라고 생각하자고 하면서도 노파심이 들었다.
나도 나이를먹긴 먹은 것 같아서 속으로 웃었다.

앞에 선 아가씨가 몸을 자꾸 움직였다.
왜 그러나 싶어 보니 아가씨 뒤에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의 행동이 수상했다.
남자는 자기의 몸을 여자의 궁둥이에 붙여 비비고 있었다.

어른으로서, 같은 여자로서 도와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적당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고 머릿속은 점점 하얗게 되어 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 사람들도 남자의 수상한 행동을 눈치챘다.
하지만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건장한 남자도 혈기왕성한 남학생도 모두 모른 척하고 있었다.
급기야 젊은 여성이 얼굴을 찡그리며 출입문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자는 여전히 여자 뒤에 붙어서 졸졸 따라 다녔다.

내 옆의 아줌마가 벌떡 일어섰다.
이렇게 빨리 내릴 거면서 내 자리를 가로챘는가 싶어 울화가 치밀었다.
그때 아줌마가 남자의 어깨를 함차게 쳤다.
남자가 깜짝 놀라며 아줌마를 쳐다보았다.
아줌마는 심각한 얼굴로 남자에게 한 마디 했다.

“니 지금 뭐 하는데?”

가방을 던지면서까지 내 자리를 차지한 것이 용서되는 순간이었다.

여자와 아줌마를 굳이 구분지어 부를 때는
여성들의 여성들의 평가절하된 표현을 할 때 많이 사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순발력으로 모든 것을 평정하며
행동으로 보여주는 이 시대의 행동파인 아줌마의 존재가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넘사벽’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는 뜻으로 매우 뛰어나서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거나 대적할 만한 상대가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아줌마에게는 앞뒤 재지 않고 순간의 순발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넘사벽’의 아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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