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손톱, 그리고 꽃(수필)

작성자
해리
작성일
2025-07-13 08:46
조회
21


여자의 손톱, 그리고 꽃 / 염정임

손톱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피부와는 다른 게, 속이 아른아른 비쳐 보이는 플라스틱 같기도 하고,
소의 뿔이나 거북이의 등껍질을 얇게 저며 놓은 것도 같다.
지문이라는 비밀스러운 부호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거나,
손가락 끝에 달린 조그만 창문 같아 보인다.
우리는 신체의 어떤 부위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감지할 수가 없다.
그러나 손톱이나 머리카락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매일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인다.

모래시계 처럼 시간의 흐름을 보여 주는 것이 손톱과 머리카락이다.
날이 갈수록 눈도 침침해지고 기억력은 흐려지는 나이에도
내 몸의 어느 한 부분이 어린아이들의 신체처럼 자라고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무언가 나에게 생명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어린 시절에는 봉숭아 꽃잎으로 손톱에 물을 들였지만,
요즈음은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거나 그림을 그려 장식한다.
손톱 장식이 유행이라, 여기저기에 네일아트 숍이란 곳이 생기고,
그곳에서 손톱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손톱만으로는 너무 좁아 얇은 막을 끼우기도 한다.

꽃들이 그 색과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원하듯이
여성들은 화장이나, 손톱 장식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나타내고 싶어 한다.
위급한 순간에는 호신용이나 무기처럼 쓰기 위해서일까.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그들의 방패나 창에 그림을 그리고 장식을 하듯이,
그들의 손톱에 꽃도 그리고 무지개도 그린다.

천경자의 그림에서 손톱을 길게 기른 여자가 담배를 물고
자줏빛 연기를 내뿜는 모습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미당은 손톱에 생기는 둥근 반월을 떠오르는 흰 달로 이미지화하고 있고,
박완서의 소설에서는 여자의 손톱을 은행 알로 비유하고 있다.
영화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한국의 여자 귀신들은 거의 모두 손톱과 머리를 기르고 있다.
객지의 빈집에서 홀로 자는 선비 앞에 나타난 여자 귀신,
그것은 선비의 억눌린 욕망이 투영된 존재가 아닐까?
생머리에 손톱을 기른 여인은 현대에서도 섹시한 이미지로 떠오르고 있다.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가져 손톱을 자른다.
나의 습관 중의 하나는 손톱이 조금이라도 긴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손톱 끝에 흰 선이 조금씩 넓어지면 자르기 시작한다.
목욕 후에 물기를 머금어 다소 말랑해진 손톱을 자르는 시간을 나는 즐긴다.
가만히 보면 부드러운 피부가 변해서 손톱이 되는 것은 참 신기하다.
갓 태어난 아기의 손톱은 부드러웠다.
살갗과 별 차이가 없다.
그 말랑말랑한 피부는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연두색 떡잎이 자라면서 색깔도 짙어지고 잎도 두꺼워지는 것 처럼
아기가 자라면서 손톱도 점점 단단해진다.

온돌방에서 한 무릎을 세우고 손톱이 잘려 나가는 경쾌한 소리를 들으니
그동안 바쁘게 보대꼈던 심신이 평안을 얻는 기분이다.
마치 잘려 나가는 각질 부분이 내가 보낸 시간 중 일이 꼬이던 때이거나,
삶에서 부정적이었던 부분 처럼,
마치 내 삶을 재정비라도 하듯 잘라낸다.

또깍, 또깍, 손톱깎이 소리는 마치 나무를 전지하는 가위 소리처럼 들린다.
나는 내 몸속으로 수액이 흐르고, 온몸이 초록 잎으로 덮인 나무가 되어
웃자란 가지들이 잘려나가는 듯한 청량감을 느낀다.
그리고 내 몸이 식물성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것은 내가 햇빛이 비치는 마루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이나,
샤워를 하며 물세례를 받는 순간 꽃들 처럼 생기를 되찾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때때로 우리의 마음은 고양이 처럼 교활하고, 늑대처럼 사납고, 돼지처럼 탐욕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얻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사는 순간은
우리 몸의 식물성이 우리의 감정을 지배할 때일 것이다.
기도하는 시간이나, 음악을 들을 때에도 식물적인 정서가 활동하는 시간인 것 같다.
식물이 가진 그 고요함과 예지, 그리고 멀리서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영성을 가진다면
우리의 삶은 좀 더 평화스러울지 모른다.

현대에는 컴퓨터나, 휴대폰 등 많은 시간을 손가락을 사용하며 살아간다.
최근에 새로 나온 아이패드는 손가락을 통해서 우리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그래서 손톱은 우리 몸을 세상과 연결하며 소통하게 하는 우리 몸의 창문과도 같다.

여성은 자신의 얼굴이나 신체를 통해서 그들의 환상과 열정을 나타내길 원한다.
손톱은 그들의 여성성을 상징하는 꽃과 같다.
이제 열 개의 꽃잎은 어둠 속의 섬광 처럼 그들의 꿈을 향하여 미지의 세계를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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